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을 일컬어 '전능하신 이', '거룩하신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의 반석과 요새', '나를 건지시는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 등의 표현으로 하나님을 부르기도 한다. 조용히 앉아서 이런 표현들 하나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들기도 하고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모든 표현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싶지만 이런 여러 표현들 중에서도 특별히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평생토록 새겨놓고 잊지 않고 싶은 표현이 하나 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32)

 이 말씀을 읽다보면 우리는 쉽게 이 말씀의 뒷부분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에 주목하게 된다.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주목해보고 싶은 것은 이 말씀 앞부분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

 성경 기자는 하나님을 가리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주신 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까지도 아낌없이 내주셨는데 다른 것들은 말해 무엇 하겠냐며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묵상해보면 이 말씀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게 해주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릴 때에야 부모님보다 부모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들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선물해주셨던 장난감이나 학생 시절 부모님께서 내주셨던 학비나 생활비 같은 경제적인 도움들이 그런 예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점점 성숙한 어른이 되어갈수록 부모님께서 주시는 어떤 '것'들보다 '부모님'과 그 '마음'에 더 주목하게 된다. 내게 장난감을 사주시던 부모님의 마음, 매일같이 나를 위해 식탁을 차려주시던 부모님의 마음, 나를 위해 일터에서 수고하시던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배우게 되고 뒤늦은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결국 내 삶에 깊숙이 남겨지는 것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경제적 도움이 아닌 부모님의 그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 사람일 때에야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보다 '하나님'과 그 '마음'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게 입을 옷과 잠잘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것, 내 모든 죄가 용서받은 것, 천국에 살 수 있게 된 것,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뒤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어린 아이일 뿐인 것 아닐까? 내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기만 바라는 사람이기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닐까?

 로마서 8:32이 기록된 문맥을 한 번 생각해보자. 로마서 1장부터 8장에는 우리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죄인인 것과 그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 마지막 문단인 8장 31절부터 39절에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로마 교인들을 위해 복음에 대해 쭉 기록하던 바울은 로마서 8장의 마지막 문단에 이르러 확신에 찬 어조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나누고 있는데 이는 복음의 중요한 결론과도 같다.

 우리는 때로 복음의 결론을 '내가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구원'이나 '장차 살아가게 될 천국'에서 찾곤 한다. 물론 그것이 우리가 얻은 크고 중요한 복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중심적인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하나님의 마음을 한 번 가만히 생각해보자. 잠시 조용히 앉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한 번 가만히 묵상해보자. 바울에게 그 하나님의 사랑이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처럼 우리들 삶의 든든한 버팀목도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이길 기도하고 소망해본다. 바울은 로마서 8장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