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쪼그려 앉으셨다.
우리가 눈에서 멀리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저렇게 앉아 계실 것이 분명하다.
그럴 작정으로 쪼그려 앉으신 게다.
마른 황토빛 벌판 사이로 할머니의 새하얀 옷 빛깔이
한 마리 우아한 학처럼 보일만도 한데 날지 못하시니 쓸쓸하기만 하다.

운전하시던 아버지께서 세 개의 백미러를 번갈아 보시며
우리에게 들키기 싫으신 듯 조용한 한숨을 내뱉으시더니
논두렁 사이로 난 그 좁은 콘크리트 도로 위에서 악셀을 세게 밟으셨다.
검정색 고급 승용차의 엔진소리가 논밭을 뛰노는 아이 소리처럼
소박하고 투박하게 '부릉'하며 울었다.

그 소리를 들으신 건지 할머니께서 한 번 더 손을 흔드신다.
앞에 앉으신 어머니도 뒤에 앉은 나와 내 동생도
일 년에 두 번 이 시간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우린 모두 한 마리 학이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었으면 하고
기도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2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께서 먼저 돌아가신 후로 늘 흰 옷만 입고
경주 시골집에서 홀로 지내셨던 할머니를 뵙는 것은
일 년에 딱 두 번 있는 명절 때뿐이다.
이틀에서 사흘정도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다시 이별해야 할 때
마음에 잔인하게 밀려드는 슬픔은 나에게나 가족들에게나
견디기 쉬운 감정이 아니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들려주셨던 할머니의 마지막 기도
오랜만에 다시 꺼내어 읽고 또 읽다가
문득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슬퍼졌다.